2019년 2월 21일 목요일

그대를 만나는날 - 작가 성하림


작 품 명 : 그대를 만나는날
작품규격 : 10F(53cm x 45cm)
재    료 : 캔버스에 아크릴
창작년도 :
작 가 명 : 성하림(세계 문화 예술대상 수상작가)



[작가노트]

소녀같은 순수함과 열정으로, 일인 다역의 성하림 화가

사회단체를 통한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주위의 많은 칭찬을 받아 고정된 틀에 얽메이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가는 대로 그리는 것이 필요

성하림화가는 그림을 통해 건강한 가정을 이루며, 더 나아가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고자 하고 있다. 화가와 시인으로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으며 활동을 하고 있는 성하림 화가는 학생 때부터 그림과 글쓰는 것을 좋아해 작품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다가 그 꿈을 실현 하기 위해 밤 낮으로 그림을 그리며 열정을 불태운 시간들,,,

그후 그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2003년엔 개인전까지 갖는 등의 활동을 한 성하림 화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등의 여러 사회단체를 통한 봉사활동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주위의 많은 칭찬을 받고 있다.
그리고 "열정만 있으면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 가는 데로 그릴 수 있다."고 얘기하는 성하림화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성하림 화가는 "제가 시골에서 자란 부분도 있겠지만 산이나 강, 시골 풍경 등에 대해 마음에 많이 와 닿고 이를 많이 표현하려 한다."고 말한다.
어릴 때의 모습과 시골의 옛 모습에서 향기를 느끼고 사물을 보며 느낌을 갖는다. 밝게 떠 있는 달을 보며 아파트 옆 흰 공간에 비친 나무와 가로등의 그림자에서 그만의 아름다움을 느낄 정도로 감수성이 뛰어난 성하림 화가는 소녀 같은 순수함과 열정으로 여러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평론]

우리의 창작세계나 사유의 세계는 자신의 "삶의 세계"의 표현이다. 농촌의 세계와 도시의 세계는 두 개의 삶의 결을 드러내 준다.성하림 작가는 흙과 시냇물과 나무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던 "생명의 세계"와 이웃 사람들의 "인정의 공동체"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였다. 작가의 의식속의 들녘과 뒷동산과 푸르른 하늘과 별이 빛나는 밤은 생명의 축제였고 꿈과 현실이 하나로 이어지는 정감의 세계였고 그리움과 기다림이 교차하는 터전이었다.

이러한 정감의 공동체는 근대화와 서구화의 물결에 밀려 흙이 아닌 콘크리트로,정감의 이웃에서 이기적 개인주의로,생명의 하나됨에서 물질적 배타성의 세계로 변해 버렸다.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의 추구 때문에 우리들은 별이 빛나는 밤하늘과 맑은 시냇물과 푸르른 들녘을 잃고 이웃과의 다정함도 잃어버리고 원자처럼 소외된 삶을 스스로 선택하게 되었다.
이렇게 근대화에 떠밀려 상실된 고향과 인정의 소멸에 대해 민족시인 신동엽은 "향아"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 향아! 구슬처럼 흘러가는 냇물가 맨발을 담그고 늘어앉아 빨래들을 두드리던 전설같은 풍속으로 돌아가자. 들국화처럼 소박한 목숨을 가꾸기 위하여 맨발을 벗고 콩바심하던 차라리 그 미개지에로 가자. 달이 뜨는 명절 밤 비단치마를 나부끼며 떼지어 춤추던 전설같은 풍속으로 돌아가자. 냇물 구비치는 싱싱한 마음밭으로 돌아가자"

이러한 우리의 삶의 세계의 변화의 추세 속에서 작가는 어린시절의 고향산천과 이웃과의 인정으로 교감하던 따듯한 추억을 밝고 아름다운 색채로 오랫동안 재현해 오고 있다.작가의 주제와 색채의 선택은 자신의 "삶의 세계"의 애정어린 묘사이고 잃어버린 "인정의 공동체"를 삭막한 오늘에 되살리려는 진한 아쉬움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현대회화의 추상성과 난해성과 돌출성의 세계를 비켜나서 구체적인 주변의 환경과 인물들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회화로 드러낸다.그곳이 시골의 툇마루이던,돌다리가 있는 여울목이던, 고단한 삶의 무게를 지고 가는 해녀들의 바닷가이던 작가는 그들의 삶과 표정을 자신과 일체화시켜 따듯하게 보듬어 준다.

자연과 인간의 삶을 오래 그려왔던 작가는 최근의 작품에서 하늘과 땅의 기(氣)의 교감을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주제로 표현하고 있다.이것은 인류의 원초적 삶의 "집단무의식"과 신화적 사유 세계를 오늘에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그것은 하늘의 태양과 땅의 "농밀한 사랑"이며 천지의 "氣의 교감"이며 견우와 직녀의 오랜 기다림 끝의 해후의 세계일 것이다. 인류가 열매를 따 먹고 사냥을 하던 때부터 하늘의 태양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었고 떳다가 서녁으로 지고 다시 동녘에서 떠오르는 해는 재생(再生)과 희망의 상징이었다.

세계의 신화와 우리의 고대 건국신화에도 수많은 "난생신화"가 등장하고 있다. 우리의 고구려의 창시자인 주몽은 금화의 씨를 고이 받은 유화부인이 알을 낳자 하늘과 땅이 서로 보듬어 기의 교감 속에 그를 태어나도록 하였고, 서라벌의 "밝은 아이" 박혁거세도 대지가 품고 있던 알을 하늘 아비가 빛의 기를 보내 자라게 하였다. 작가는 이러한 인류의 오랜 집단무의식의 세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하늘과 땅의 기의 교감에서 사람이 태어나고 꽃이 피어나고 나무가 자라고 뭇 생명이 자라고 있음을 여러 기법과 다양한 색채의 조화로 표현하고 있다.

우선 작가는 캔버스의 바탕을 카오스적 기의 흐름의 느낌을 주기 위해 단순평면감이 아닌 질감있는 바탕으로 바꾸자 한다. 그렇게 표면의 질감을 살린 후에 밝은 태양과 그것이 뿜어내는 거대한 기와 생명의 소용돌이를 나타내기 위해 아크릴과 유화물감을 사용하고 있다. 질감있는 표면과 정열적인 색채의 구사로 인해 성하림의 작품에는 신비적인 마력과 기(氣)의 소용돌이와 생력의 분출이 드러나게 된다. 태양을 열망하는 땅의 애타는 기다림 속에서 모든 생명의 "농밀한 교감"이 이루어져 낳고 자라고 또 낳고 자라는 생생불식(生生不息)의 생명들의 사랑의 대향연이 계속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작품을 살펴보면 사랑과 정열과 생명의 원천인 태양이 상단부의 한 중심에 있고 그 태양을 중심으로 기의 흐름 즉 에너지의 파노라마가 마치 태풍의 눈을 둘러싸고 에너지의 소용돌이가 퍼져나가는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래서 해는 정열의 붉은 색으로 하늘은 깊은 꿈의 색으로 나타나고 그 하늘의 정열의 에너지는 땅의 갈망과 만나 뭇 생명을 보듬어 자라게 하고 성숙시키고 있다.

그 생명의 향연에 우리들도 호젓한 들판에서, 때로는 달빛 흐르는 어느 여울목에서 그리움을 안고 또 다른 생명의 잉태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작가의 의식세계는 더 넓어지고 성숙되어 고향과 이웃의 인정의 교감의 묘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온누리의 생명들이 하늘과 땅의 기의 교감과 태양과 대지의 "농밀한 사랑"에서 탄생되고 유지되고 성숙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세계는 " 각자의 인식의 한계 안이다"라는 말이 있다.다시 말하자면 우리들은 각자의 소프트웨어의 용량만큼씩만 세계를 인식한다는 말이다. 우리들의 사유의 세계나 표현의 세계는 각자의 인식의 한계내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의 골짜기에 평생 갇혀 지낼 것인지 아니면 여러 골짜기를 아우르는 큰 산맥이 될 것인지는 각자의 유전적 그릇의 크기와 후천적인 노력의 상호합일에 달려 있을 것이다. 성하림 작가는 두 번째의 회화적 골짜기에 들어서 있다고 보여진다. 보다 넓게 보고 깊게 사유하고 연찬하면서 많은 깊은 골짜기를 아우르는 회화의 큰 산맥을 이루기를 염원해 본다.

2009. 5. 30 .글/미술평론가 김선보




출처[포털아트]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