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란 달무리를 뿜어내며 희푸른 구름 속을 헤치고 솟아오른 만월이 중세 베네치아의 밤을 비춘다. 짧은 여름밤을 아쉬워하는 카페의 젊은 웃음소리들이 밤하늘에 퍼진다. 여기저기서 창문의 불빛처럼 도란도란 흘러나오고 있는 소리들은 만찬을 즐기며 혹은 차를 마시면서 나누고 있는 가족들의 정겨운 담소이리라. 불 꺼진 창문 틈에선 비밀스러운 연인들의 포옹 소리도 숨 가쁘게 새어 나오는 듯하다.
이 그림은 화면의 중앙을 관통하는 청색 톤(하늘과 강물)을 중심으로 하여 그 좌우에 주황색 톤의 건물들을 배치, 대비시킴으로써 색감의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좌우의 건물들 사이에 놓여 있는 구름다리는 화면의 균형을 유지하는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어설픈 듯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를 구사하는 이금파 작가의 솜씨는 그가 그려 내는 빽빽이 들어선 건물들의 선과 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의 붓이 지나간 자리에선 붓맛이 아닌 구수한 손맛이 느껴진다. 건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짓기 때문이다. 현관, 창문, 발코니, 테라스, 벽, 지붕 등 하나하나를 일일이 손으로 짓는다. 그래서 직선도 때로는 구불구불하고 차가운 석조 건물이지만 따스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그림의 백미는 밤하늘에 뜬 구름이다. 바람의 방향과 강약에 맞춰 시시각각으로 그 형태를 바꾸는 구름이지만 농담(濃淡)을 세밀히 배합한 작가의 붓질 앞에선 변덕쟁이 구름도 어느 순간 자신의 참모습을 숨기지 못하고 여실히 드러내고 만다. 달무리를 거느린 주인공 만월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음은, 뭉게뭉게 흐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묘사된 구름의 조연이 있기에 가능하다.
건물과 구름다리, 카페와 사람들, 나무와 꽃, 배와 강물, 구름과 달 등 모든 소재가 제자리에서, 제 모양으로, 제 색깔로 치장하고 있는 이 작품 '베네치아의 만월'이야말로 구도상 더는 빼고 넣을 것이 없는 근래 보기 드문 명화이다.
출처[포털아트 - a37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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