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트코리아 2009년 9월호 (작가탐구 - 신범승 화백) >
독자적인 자기언어 만들어낸 화단의 중진
현대인의 심미주의 예술양식은 어떤 것일까. 시체 말로 한참 뜨고 있는 서구에서 수입해온 팝아트 화풍이나 컨템퍼러리한 것일까. 혹은 국적불명의 해석이 불가능한 난해한 그 무엇일까. 모든 예술은 그 민족과 문화의 태생적인 비밀을 가지고 있다. 그 비밀이 시각적인 예술로 창조되어 세계질서나 세계의 양식과 접목되고 공존할 때 비로소 예술로서의 반열에 낄 수 있는 것이다. 요즘 현대미술이 젊은 세대들에 의하여 세계시장 등에 뛰어들어 단발로 반짝 튀었다가 바로 사그러지는 까닭은 태생의 불확실성과 창작성의 결여 때문이다. 아무리 선진국의 예술을 각색하고 리바이벌을 해도 그 수명은 단명을 하고 단타로 끝나버리는 것이 고금의 진리요, 예술의 정체성인 것이다.
신범승의 회화세계는 편의상 4기로 분류할 수 있다.
초기에는 사실주의에 기초한 자연의 정직한 묘사, 과장을 배제한 소재주의에 충실했던 시기라고나 할까. 그 후 인상주의 화풍으로 선회를 한다.
당시 빛과 색채가 어우러진 인상주의 화풍이 세계적인 미술사조로 휩쓸었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한국의 화가들이 이 시대적인 변화의 체험을 누구나 겪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러나 작가 신범승은 모네나 세잔느 등 회화의 진수를 탐색하는데 그쳤고 사실은 사실주의 연장선상에서 오지호, 김주경 등 색채주의를 탐닉했던 변화주기를 이때에 맞이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후 그의 회화의 제3기는 남국의 태양과 검은 대륙의 열사가 작열하는 포비즘 스타일의 입체파 화풍이 전개되었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른바 자유분방하면서도 작가의 강열한 주제나 정신주의가 투영되었던 시기로 작가가 희구하는 본격미술이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른바 작가가 성취코자 하는 자유의 미학이 이때부터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장황하고 설명적인 피사체의 축쇄와 긴축, 표현질의 진수만을 화폭에 담는 고답적인 작가의 사유의 철학이 표출되는 시기라고 할까. 긴축과 절제 등 불필요한 덧살을 말끔히 떨쳐버린 순도 높은 예술행위가 이때부터 실현된 것이다.
기법과 표현의 방법론이 매우 특질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동양인이면서 한국성을 실현하려고 하는 것이 신범승의 승화된 예술세계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작고한 미술평론가 이일씨는 94년 서울갤러리에서 가진 작가의 전시평문에서 -생략- ‘그의 소박성 바탕에는 이 화가의 보다 밀도 있는 기량이 깔려 있는 것이다. 화면공간 처리에 있어서 흔들림 없는 견실한 구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색채화된 능숙한 마티에르, 구사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회고적‘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이미 감각적인 현실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또 다른 상상공간을 지닌 세계, 요컨대 내면화된 비전의 세계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신범승의 사실적 회화세계는 표현주의 세계에로 접근해 가는 것이다’ 라고 상찬하고 있다. -생략-
미술평론가 박용숙씨는 ‘그가 만들어낸 작품 그 자체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그가 어떤 비법을 지녔기에 그토록 못 그리는 소재가 없이 닥치는 대로 그려 내는가 라는 일종의 솜씨론과 그 비법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시각은 그가 자신의 그림그리기를 ’조임(다져짐)과 풀음(유유함)‘이라고 표현했던 것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말은 마치 일류 요리사가 그렇듯이 그 어떤 재료이든 자신의 손에 닿기만 하면 마치 알라딘의 램프에서 무엇이든 원하는 것들이 쏟아져 나오듯이 그림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다재다능한 솜씨를 우리는 예부터 ‘내림’이라고 한다. 신교수의 그림은 구체적으로나 색의 조정(調定)에 있어서 그 초기의 비절제에서부터 절제로, 혹은 산만하게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하나의 덫으로 향해 꼼짝없이 모여들 듯이 그 나름의 통일된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초기의 그림들에는 인물, 정물, 누드, 풍경들이 묘하게 뒤섞이거나, 혹은 [도자기 장수], [투계], [낙토(樂土)] 시리즈에서처럼, 풍속적인 성향을 띤 그림들이 혼재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가 그의 작품을 근거로 서구적이든 한국적이든 어떤 인문학적인 담론을 전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그의 작품을 평가하는 비평가의 입장에 따라서는 [도자기 장수]나 [투계]와 같은 작품을 근거로 풍속주의를 논의할 수도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예컨대 미술평론가 윤진섭은 이렇게 말한다.
70년대 중반부터 그가 관심을 기울여 온 주제는 ‘회고’와 관련된 정취들이다. [도자기 장수], [투계], [낙토] 시리즈 등 일련의 작품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거리의 풍물이나 시장 풍경을 소박한 필치로 담아낸 이 무렵 작품들이 모티브 면에서 볼 때 근작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94년 화랑미술제, 카탈로그)
이 처럼 평자들의 시각이 한결같이 통일성을 이루고 있는 것은 관찰하는 시점이 공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가 좋아하는 한국적인 정서는 어떤 것일까. 그는 오로지 자신에게 적절한 길이 뭔가를 모색하며 거기에 맞는 표현을 찾아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 가려는 화가다. 외부적 충동이나 유행 따위나 잡신경에는 관심도 없는 자신의 기량과 능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자기 영역을 확보해 가는 화가다.
신범승의 제4기 예술은 무엇일까.
두말 할 나위 없이 표현주의 예술의 등장이다. 피사체로서의 사실의 세계와는 멀어진 자의식의 세계라고 할까. 형식과 규제 등 위선의 세계를 예술행위로 저항을 하려는 의지가 작품 속에 투영되고 있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나 형상 등 그리고 색채와 선과 면 등 비대상적인 강열한 표현주의 어법이 연출되고 있다. 이는 사실주의의 장황한 확대해석이라든지 아니면 제한된 캔버스의 한계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그로 하여금 표현주의 양식을 선택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예술행위가 어느 한가지 예술양식에만 매달리는 것은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고 다양성의 공존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백미를 발견할 때 그의 예술은 꿈과 희망이 실현되는 피안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지난 5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의 한국 구상대제전의 초대전에서 ‘잡기를 버리고 묘법이 있듯이 무엇을 그리는가의 방법이 아니라 그리는 것 자체의 방법적 모색으로 캔버스와의 숙명적인 진실한 대화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구상화라 할지라도 무엇이 어떻게 그려져 있다기 보다는 자신의 지성을 풀어내는 과정이면 족하고 꾸미거나 거짓말 같은 타성이 있어서는 안된다.’ 라고 작업과 관련한 작가의 집념을 토로하고 있다.
예술이란 자연과 인간이 말 없는 묵시적인 교감을 통해 인본주의의 실현 등 인류의 역사 속에 자유와 평화를 실현하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자연은 인류의 본향이며 언젠가는 인간이 회귀하여야 할 마음의 본향이기도 한 것이다.
신범승의 예술은 구상과 추상이 귀일하는 등, 때론 사실주의와 표현주의가 동시에 공존하는 자유분방한 자유의 미학을 구가하고 있다.
그가 그릴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반문을 하고 싶을 만큼 분방한 작가의 예술양식은 소재의 다양성과 깊고 두터운 섭렵 등 그 진폭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창조적인 예술을 연출하고 있는 우리 화단의 중진급 원로화가다.
- 김남수 / 미술평론가 -
출처[(주)포털아트(www.por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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