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6일 화요일

박제일의 칼바위를 바라보며


우선 북한 그림에서 비록 정통 묵화는 아니지만, 온통 시커먼 묵화를 보게 된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이는 추상화의 영역에 가까우면서도 옛스런 회화의 세계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도 대부분의 화가들은 이런 화풍에 익숙하지도 않고 쉽게 그려내거나 용인되지도 못한다.
북한에서는 묵화가 봉건적 사대부의 잔재라고 하여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나, 리석호를 필두로 정영만에 이르러 아예 정통파적 입장해서 묵화를 즐겨 그리면서 묵화의 위상을 화려하게 복권시켰다. 묵화 자체가 고유의 필력의 힘과 단순함의 매력, 그리고 집약과 생략의 추상성의 기운을 불어넣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개성과 독창성이라는 덤도 누릴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요즈음은 최창호라는 정영만의 제자가 그 방면의 회화의 세계를 넘나들며 전성기를 꽃피우고 있다. 그런데 박제일이라는 독특한 동서양의 화풍을 접목한 대가에게서도 이런 영역의 묵화 화풍의 그림을 본다는 것은 대단히 신선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오랜 관록의 대가 사진가의 고풍스런 흑백사진을 전시회장에서 뜻하지 않게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붓질이 화선지를 지나가자 칼바위의 험준한 산세를 드러내는 조형성과 푸른빛을 띤 먹색의 신비로운 색채감이 펼쳐지는 모양새가 이 방면의 대가인 정영만에 결코 손색이 없다. 박제일은 그 보다 10년 선배인데 경력으로 따지면 이미 70년대부터 국제적인 화가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칼바위 다음 감상 포인트로는 거친 산세의 옆구리를 들이받는 듯한 푸른 빛의 구름 덩어리들은 웅장한 기상과 태고적 역동성을 형용하고 있다.

출처[포털아트 - jangra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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