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2일 토요일

정창모의 달밤의매화를 감상하며


북한이 자랑하는 '조선화'라는 피조물에 신의 손길처럼 스치고, 신의 입김과도 같이 스며 들어와 독보적이고 온전한 생명체로 거듭나게 만든 주된 신의 전령이 몰골법이다. 북한에서 몰골법은 숱한 논쟁과 비판, 다양한 시도와 시련을 통해 연꽃같이 다시 피어난 존재이다. 서투른 솜씨로 몰골법을 적용하려 했다가는 뒤죽박죽의 잡탕스런 어수선한 그림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에 그에 관하여 북한 화단에서 현미경으로 뒤져보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데 시간이 적지않게 소요되었던 때문이다. 이방의 종교가 들어와 모진 탄압을 받은 연후에 더욱 번창하는 것처럼 몰골법은 역설적으로 그런 연후에 북한에서 뿌리를 더욱 단단하고 억세게 내릴 수 있는 토양을 갖추게 되었다.
근대 북한 조선화의 태두인 리석호와 정종여, 현대 3대 조선화가 중 김상직과 정창모는 그야말로 조선화 분야의 역사적인 라이벌들이고, 그중에서도 몰골화법에 관한 한 신출귀몰한 재주와 완벽한 시적 운율과 표현력으로 조선화를 꽃피워 세계적인 위상을 드날리게 한 장본인들이다. 몰골법은 때로는 구렁이 마냥 부드러운 몸짓으로 힘있게 꿈틀거리듯 생동하고, 어떤 때는 황새의 부리처럼 날카롭게 뻗쳐 나가 그 오묘한 형상미가 종잡기 어렵게 전개되는 단붓질 기법이다.
2005년 제8회 베이징국제예술박람회에서 선우영과 함께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한 시점을 전후로 2000년대 초중반에 이르러 그의 신들린 몰골법을 만개시키는 느낌이 든다. 그의 예리하고 번뜩이는 손맛, 푸근하며 너울거리는 부드러운 붓질의 힘이 강렬히 느껴지는 천의무봉(꾸민 데 없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며 완벽함)의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오히려 작고 시점인 2010년 직전인 2009년 이후의 작품들에서 매우 정교하고 섬세함이 두드러진다. 기력이 쇠잔하고 병약해질수록 더욱 화선지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며 한필한필 정성어리고 살뜰한 붓질의 흔적이 역력하며 색채를 화려하고 다채롭게 구사한다.
이 그림을 그린 2004년 시절은 그의 최전성기에 속한다. 달밤의 매화는 정창모가 즐겨 그린 소재인데, 여기서는 단 두가지 칼라의 색조로 색감의 통일성을 추구하여 이채롭고 현란한 색채감이 인상적인 말년작과 확연한 대비를 이룬다. 꽃잎의 외관에 원형의 테두리를 두 번 두르고, 우산살처럼 촘촘하게 뻗어나간 방사형의 매화 수술 묘사함에서 정신 없는 속도감으로 내달리는 필력이 돋보인다. 환한 둥근 보름달을 하얀 여백으로 두어 달빛에 비친 노란 매화꽃잎들과 색상을 선명히 대비시키고, 묽은 수묵으로 바탕을 두른 어스름한 배경, 진한 묵으로 농담을 주어 나무의 명암을 오목조목 입체감 있게 표현함에 있어서 그의 진가는 휘영청 밝은 어둠 속의 달빛처럼 파도치며 흘러 나온다.

출처[포털아트 - jangra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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