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4일 금요일

山河 메아리 - 작가 박경호


작 품 명 : 山河 메아리
작품규격 : 6P(41cm x 27.3cm)
재    료 : 캔버스에 유채
창작년도 : 2006
작 가 명 : 박경호



[평론]

視知覺으로 자연을 찬양하다

80년대 박경호 화백의 그림은 세련되고 멋진 그림으로 우리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주로 물감의 흘림과 여백의 긴장을 적절히 구사했던 추상 표현주의 계열의 작업이었다고 기억된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화단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붓을 던졌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로부터 20년이나 지난 작금에 와서 그는 불쑥 개인전을 한다고 연락이 왔다. 알고 보니, 그는 그 동안 깊은 산속에 화실을 짓고 그곳에 은둔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런 정황이어서 나는 대단한 호기심으로 그의 화실을 찾았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예전의 그 멋쟁이 추상화가 아니고, 한마디로 말해서 풍경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추상화의 뿌리에다 풍경화를 심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중략)

그의 풍경에서 인적(人跡)이 제거되는 것은 그 첫 번째 증거이다. 무섭게 치솟은 뾰쪽한 바위는 푸른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과 대응되면서 중성적인 이미지를 만든다. 구름이 마치 천사의 날개처럼 가볍게 너울대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은 그런 전략으로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면은 언덕과 나무들에서도 볼 수 있다. 화가는 중용미(中庸美)라고 부를 수 있는 이 풍경을 실현하기 위해, 80년대에 보여주었던 그의 멋진 조형언어를 순수(純粹)라는 이름으로 찬양하지만, 그 뜻을 '자연의 속살'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조형작업은 결국 자연의 속살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이 화가가 자신의 풍경세계를 음악적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도 결국 자연에 감춰진 속살을 그 나름으로 우리의 시선 앞에 펼쳐 놓으려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것은 폴 클레가 "자연과의 대화는 예술가에게는 항상 불가결한 조건이다"라고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연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중략)

낭만주의 시대의 화가들은 자연에 진실이 있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열정적으로 풍경을 그렸다. 영국의 비평가 클라크(K. Clark)는 풍경화를 논하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풍경화는 우리들의 지각이 미치는 반경을 확대함으로써 우리들의 행복감을 고양시키는데, 이때 행복감은 곧 사랑이다."

우리의 지각(知覺)이 미치는 반경은 한계가 있다는 말에 유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한계를 화가는 풍경화를 통해 넘을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풍경화를 통해 자연의 숨겨진 속살을 보다 가까이 들여다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미학자는 이 속살을 시지각(視知覺)이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으며, 풍경화가는 그의 천재적인 시지각을 통해 우리에게 자연의 속살을 경험하는 행복감을 맛볼 수 있게 한다.

박경호의 색면 만들기도 바로 그런 노력의 성과물이고, 그 성과물은 그의 20년 은둔 세월을 보상해줄 수 있기에 충분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2009-05-25자 CNB뉴스 : 미술평론가 - 박용숙>





출처[포털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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