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7일 토요일

난이 있는 화병 - 작가 김행령



작 품 명 : 난이 있는 화병
작품규격 : (20cm x 20cm 약2호)
재    료 : 동판에 칠보
창작년도 :
작 가 명 : 김행령(원광대학교 교수)



[작가노트]

< 작가노트 >

금속공예가라면 누구나 느끼는 재료의 성질과 매력 다양한 얼굴을 가진
미술 형식도 드물 것입니다.
작가 개인의 내면을 드러내고 전달하는 순수한 표현 매체와 실생활에
그 가치를 발산하는 생활 공예로서 김행령 작가는 그 하나 하나의 작품을 표현합니다.

금속의 단조와 열풀림을 통해 어떨땐 단단해지고 부드러워지는 재료는
늘 첫사랑의 기억처럼 설레임과 밉살맞음으로 다가오고 때로는
강렬하지만 부드럽고 섬세함으로 다가왔다가
깨달음을 주고 한층 더 성숙한 내 자신을 발전하게 한 스승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나의 작업은 다만 금속공예의 한 장르와 그림일뿐 진짜 작품은 늘 네 가슴속에 있게 하는
이유일 것이리라...

작업은 늘 호기심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정형화되어 틀에 박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일상 늘 보아왔으며
늘 감지하고 있는 서정적인 상징화며 기능미를 넘어 기하학적 형태미 위에
회화적인 단위로서 평면성과 입체성을 부가하여 서정적 소재를 담아내면서
여기에 아주 개인적 주관과 감성이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석공이 필요 없는 부분을 큰 망치와 정으로 떼어내고 또 떼어내어 작품을 완성시키듯
인생의 군더더기를 떼어 나가는 삶이 작가적인 삶인 것처럼 작품을 만들면서
쏟아 부은 시간과 정성은 마음의 몸짓인 것입니다.
내 작품에 머무는 시선들 앞에서 내 마음 한 조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평론]

김행령 교수의 작품은 세가지 스타일의 개성있는 작업으로 나누어 집니다


국내는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유일하게 제작하는 아크릴 작업으로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누구라도 흉내내기 어려운 아크릴 이라는 재료를 이용하여 아크릴 뒷면에
무수히 많은 타공기법을 내어 조각하듯이 나타내고자 하는 형상을 세밀하고 빈틈없게
문양을 표현하고 세련된 현대적인 느낌의 아크릴 물감을 뒷면에 기술적으로 넣어
채색한 작업과 동,주석, 보석등을 이용하여 가을의 정서를 한 껏 만끽할 수 있는
서정적인 금속공예로서 재료의 성질과 매력, 다양한 특징을 작품에서 느껴 볼 수 있는
그림이 실린 금속공예 작업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1000도의 가마속에서 유리질화 되어 탄생하는
영원성의 작품 - 보석작품 같은 "칠보와 회화의 만남"이라는
아름다운 칠보작품으로 나누어 집니다



기운생동하는 꽃과 풍경등을 전하는 감성을 캔버스가 아닌 아크릴,칠보,금속등에
회화적 사실성에 근거하여 접목 시킨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작업이라 작가의 오랜
각고의 노력과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등, 역경을 헤쳐가며 이루어낸 값진 예술 창작품으로
많은 애호가분들의 사랑을 받을 것을 확신합니다



출처[포털아트]

기다림 [une attente - 아떵뜨] - 작가 유화



작 품 명 : 기다림 [une attente - 아떵뜨]
작품규격 : 10F(53cm x 45.5cm)
재    료 : 캔버스에 유채
창작년도 :
작 가 명 : 한미키(프랑스 미술협회 심사위원)



[작품 평론]

'살롱 드 오톰' 회장이자 미술평론가인 노엘 꼬레는 한 화백의 데생 작품에 대해 "한 천재화가의 치열한 탐구와 열정이 빚어낸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추상화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독특한 구도와 극도로 절제되고 제한된 채색에, 한미키 작가는 저항할 수 없는 도약의 느낌을 주기 위해서, 광란의 아라베스크 문양을 평면에 겹쳐 표현함으로써 그림에 활기를 더했다. 방법론적으로, 조형예술의 엄격함과 함께 선과 평면, 그리고 색의 조화를 합리화 시켰다."

그리고 노엘 꼬레 회장은 한 작가의 작품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고 확인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방법론적으로 조형예술의 엄격함과 함께 선과 평면, 그리고 색의 조화를 합리화시킨 것이며, 모든 차원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성향이 그림의 형태로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이런 독특한 방식의 작품을 통해 화가는 우리에게 친근한 대상으로 다가온다"고 극찬했다.
그는 끝으로 "바흐(Bach)가 우리에게 가장 완벽한 음악은 악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원천이라는 것을 알게 해줬다면 한미키는 우리의 감각이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고, 다시금 이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고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미술평론가 노엘꼬레의 글 인용-


[평론]

한미키 작가의 작품은 60년대의 구상화에서 70년대의 인상파, 그리고 인상파와 사실화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하게 되는 80년대 이후부터 1992년 프랑스로 가기 까지 캔버스에 대한 한미키의 응시태도는 차츰 사물의 본질에 대한 실험과 탐구로 발전한다. 구상이나 인상파적 회화성은 입체파 특유의 사실주의적 태도 - 분석적 입체파는 사물의 존재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실재를 추구하고 있다 - 와 고리를 이루고 내면의 저 속에서 꿈틀대는 열정과 미지에 대한 탐구라는 화두를 향해 몸을 던진다. 그 욕망의 중심에는 아방가르드와 다다이즘이 뒤섞인 창조적 자기 파괴의 광기가 천착되어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하게 된다. 이는 프랑스 선구적 입체파 화가들의 동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본질적인 감각, 장방형과 원주와 원뿔. 중앙 집중적인 기하와 주변부로 갈수록 분해되어 커지는 평면성. 형태 자체의 구조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한한 단색조의 색채를 .이런 방식의 형상화는 원통, 구, 원뿔이라는 기하학적 틀을 통해 사물을 시각적으로 인식한다고 보았던 세잔의 틀에서도 벗어나지 않는다. 결국 세잔은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원통, 구, 원뿔의 모습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실재는 존재하지만 인간은 그 실재를 인식할 수 없다며 인간의 인식능력의 한계를 인정한 칸트의 회의와 맥을 같이 한다. 이 지점까지가 세잔의 후예인 분석적 입체파들의 입장이다. 소재에 대한 관심은 1921년 이후 종합적 입체파 시대에도 이어지며 이즈음은 형태의 결합이나 종합 즉 컴포지션을 강조한다.

한미키 작가야 말로 전형적인 분석적 입체파의 후예가 아니던가. 그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이 분석적 입체파에서 세밀하게 결정화되고 해체되는 사물들은 더욱 극단적으로 세밀화 되고 해체된다. 그러나 이 해체는 조합을 위한 해체다. 해석을 위한 해체이며 현실감을 위한 꼴라주이다.
그에게 사물은 모두 움직임이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움직임의 사물을 포착하여 그 움직임 속에서 아름다움과 에너지를 발견하여 잡아낸다.
"움직임이 많아지면 더 아름답고 강한 느낌이 나요. 그래서 더 많은 즐거움을 주죠."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이다."

하지만 그 움직임의 대상은 동물이거나 관성에 의해 움직이는 어떤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사람! 그에게 사람은 세계의 전부이며, 우주의 전부이다. 따라서 움직임을 포착하는 방식은 다양한 색깔을 통해 드러나거나 순수의 색깔을 통해 드러난다. 이 색깔들은 입체주의에서도 그랬듯이, 구상양식에서 오케스트라 같은 역할을 해준다.
그가 프랑스 언론을 통해 줄곧 해온 말 중에 하나가 사랑이다. 그에게 사랑은 기독교적인 아가페류이기도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 속에서 움트는 따뜻한 그 무엇이거나 에로스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곳 그것을 그는 영혼이라고 말한다.

초기의 인상주의적 색빛 감각과 표현주의적 구상은 이즈음 노골적으로 신입체파의 맥 속으로 침잠한다. 세잔의 후예인 초기입체파들의 사물의 본질에 대한 의심은 모든 사물은 정방형이나 원뿔 등 갖가지 기하로 환원된다는 분석적 성찰은 한층 복잡하거나 징그럽도록 캔버스를 쪼개고 쪼갠다. 사람을 쪼개고 그 옆의 의자를 쪼개고 꽃과 꽃병을 쪼개고 커튼을 쪼갠다. 그래서 하나의 상이 이루어지면 색을 입히고 본질의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기아는 흩어지거나 모아지고, 모아지거나 흩어진다. 그러나 미묘한 미학적 조형성을 이루어낸다.
이른바 신입체파다.

여기서 한미키는 자신만의 양식을 만들어낸다. 그 시선의 예봉이 사람에게로 머물고 사람은 움직이고 또 나체가 된다. 나체는 사랑을 나누고 따뜻함과 열정과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것에 대한 천착이 한미키의 작업이다. 이런 일련의 작업은 색깔을 좀 포기하고 데생 부분을 늘인다거나, 산산 조각난 육체와 사물의 조화는 큰 원형의 곡선을 통해 움직임의 생동으로 드러나고 색 터치에 의해 재조합 된다. 한미키의 탈구조주의적 발상이 한미키 방식의 신입체파로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의 그림 속으로 가보자. 꼼꼼히 들여다보면 그림은 매우 파격적이다. 남녀가 뒤엉켜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여럿은 혼음을 하는 듯도 하다. 그래서 음란하거나 더러는 퇴폐적 이거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속내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가 궁극에 도달하고 싶은 곳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퇴폐와 음란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보일 수가 없다. 이 모든 것을 그는 분석적 화법과 탈구조주의적 고민으로 해결한다. 그리고 모든 것은 '영혼'으로 수렴된다. 그의 회색과 검은색은 바로 이 '영혼'의 표출이다. 분석적 기하는 다름 아닌 형이상학적 '사랑'의 표현이자 종교적 구원의 몸부림이다. 군상들은 움직임을 통해 찰나와 영원히, 육체와 영혼이 교차되거나 공집합을 이룬다. 이것이 한미키 작품세계의 시스템이다.

-2007년 '한미키'고국 초대전 도록에서 발췌-


출처[포털아트]

일출 - 신,망,애(日出 - 信,望,愛) - 작가 신동권



작 품 명 : 일출 - 신,망,애(日出 - 信,望,愛)
작품규격 : 10F(45.5cm x 53cm)
재    료 : 캔버스에 아크릴
창작년도 : 2015
작 가 명 : 신동권(한국미술지도자협회 회장)



[평론]

신동권화백은 태양을 훔친 화가다. 가난한 이웃을 도우려한 장발장보다 더 간 큰  도둑이시다. 어쩌면 세상에서 이처럼 위대한 도둑이 또 있을까. 

하늘의 태양을 훔쳐 거실로 옮기다니, 나는 그가 우리와 함께 동시대인으로 존재하는 것에서 위안을 느낀다. 태양을 보다,  태양을 꿈꾸다, 태양 속으로 사라진다면....... 우리가 잊었던 태양이 다시 가슴에서 부활한다. 
작가의 탁월한 힘이다. (2004년 평론가 탁계석, 21세기문화광  대표)


신동권의 회화작 발언은 어디까지나 순수한 자연주의에 바탕을 두면서 태초의 에덴동산을 연출하는데 있다.그의 유화적 발상은 원초적인 인간의 낙원을 형상화하여 내일에의 보다 밝은 희망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곧 인간의 특성인 반추성, 귀의성 그리고 나아가서는 회귀성으로 일관 되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하나의 인류의 큰 비극으로서의 공해에 대해 절감하며 원초적 에덴동산을 갈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기원을 묵시적인 예술에서 반영시켜 보자는데 신동권의 회화적 특성이 있는 것이다(주간미술 표지작가 이야기 중에서)


신화백의 푸른 해와 첫 대면하던 순간의 충격과 감동을 나는 아직도 선연히 기억한다.

그것은 마치 밀폐된 굴속에 갇혀 시시각각으로 희박해져 가는 산소를 갈구하면서 생명이 자자들던 사람이 갑자기 무엇인가에 나꿔채져 신선하고 맛있는 산소가 가득 찬 숲속에 내던져진 그런 느낌이었다.

이마가 싸늘해지는 충격 이었다아아아아...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탄성을 토했다. 그리고 역시 또 나도 모르게 가슴 가득히 기인 숨을 깊고 깊게 들이마셨는데 그 숨을 도로 내놓으면서 내 마음이 느닷없이 탄식처럼 중얼 거렸다. 그래! 거기가 내 고향이야... 내가 거기서 왔어...나는 저기서 출발 했어... 저기가 나의 시작이야.

그것은 슬픔에 가까운 빛깔의 느낌이면서 모순되게도 한편으로는,오랜 동안을 찾고 헤매던 것을 마침내 찾아낸 것 같은 가슴 뜨듯한 감동이기도 했다.나는 그의 해와 그렇게 만났고 만나는 순간에 반해버렸다.우리는 해를 볼 기회는 많고도 많다.두터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는 있어도 해가 없는 날은 없지 않는가.

그런데 실존의 해를 보면서는 느낄 수 없었던 "내 초원의 고향에의 향수"를 신화백의 작품에서 느끼는 까닭은 무엇일까...내 멋대로 마음대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그것은 아마도 그가 우주를 향해 외치는 화두가 우주의 마음과 영과 혼에 부딪혀 응답으로 되돌아와 빛과 파동 하여 화폭 위에 살아 있기 때문 아닐까.

나는 그림을 모르는 사람이다.나는 음악도 모르는 사람이다.그러면서도 그것들을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욕심도 알고 싶다는 의욕도 없는 사람이다. 이대로 무지한 채로 그저 느껴지는 대로 느끼며 사는 것이 자유로워 나는 이편이 썩 좋다.그의 푸른 해로부터 나는 청정과 순수와 善의 이미지를 얻는다. 또 우아한 허무와 싸늘한 비애도 느낀다.

그의 아스라한 붉은 해를 바라보면서 나는 그 너머에 있을 듯한 적막한 평화와 휴식이 때로는 그립고 또 때로는 두렵기도 하다. 나는 그의 해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극작가 - 김수현)


출처[포털아트]

2015년 2월 6일 금요일

신동권화백의 "일출" 고맙습니다.^^


2015년 새해에 신동권화백의 2015년 작품"일출"을 낙찰 받게 되어 기쁩니다.^^
오래전부터 신동권화백의 작품을 보면서 붉은 태양과 푸른 태양을 각 한 점씩 소장하고 싶었는데 오늘 드디어 붉은 태양을 소장하게 되어서 감동입니다.!
신동권화백의"일출"을 저희 갤러리에 전시하여 많은 분들이 감상할 수 있게 되어서 행복하고.
"해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신화백님을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출처[포털아트 - dharch]

수요일엔… - 작가 전찬욱


작 품 명 : 수요일엔…
작품규격 : 2F(26.3cm x 18.3cm)
재    료 : 캔버스에 혼합재료
창작년도 : 2015
작 가 명 : 전찬욱('11 구상전 최우수상 수상)



[작가노트]

시간의 존재성.
시간은 움직임이 있는 상황에서만 시간의 존재성을 인정한다.
흘러간 과거도 현재의 시간의 흐름이 없다면 현재 또한 그리고 먼 미래의 시간도 없을 것이며 나 자신 그리고 모든 이들의 존재도 없을 것이다.

흐르는 시간의 존재성을 인식 한다는 것은 살아가고 있다는 존재에 대한 긍정적 사고이며 무의미하게 흘러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반성과 또 다른 새로운 시간을 인식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나아가 또 다른 나의 정체성을 찾는 수단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끈임 없는 작업 과정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고, 무심히 흘러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반성과 시간의 중요성을 표현해보고자 하였다.

작품은 작가 자신의 내면적 정신세계를 표출한 자신의 자화상이라 생각되며 작품 안에서 보여 지는 화면 분할은 면과 면을 통하여 본다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현재 존재감을 일깨워 주며 면과 면은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여지는 추상적 이미지는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고 보여 주었던 많은 일들을 잔상으로 표현하였으며 시간의 흐름을 아라비아 숫자로 기호화시킴으로써 시간의 존재성의 의미를 극대화 시켰다.

작품을 보는 감상자로 하여금 시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보다 더 나은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초현실주의의 데페이즈망 기법으로 작품에 임하였다.

※ 초현실주의 데페이즈망기법이란?
추상적인 성격이 아닌 사실적이며 구체적인 형상을 비논리적이고 모순된 결합으로 표현한 것이다.
물체나 영상을 그것이 놓여 있는 본래의 위치에서 전위법으로 모순, 대립되는 요소들을 동일한 화폭에 결합시키거나 어떤 오브제를 전혀 엉뚱한 환경에 위치시켜서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불러 일으키는 기법으로, 이는 심리적 충격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속 깊이 잠재해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해방시키는 역할을 하는 초현실주의 기법이다.


출처[포털아트]

BESTSPACE - 고향 - 작가 신범승


작 품 명 : BESTSPACE - 고향
작품규격 : 4P(33.4cm x 21.2cm)
재    료 : 캔버스에 유채
창작년도 :
작 가 명 : 신범승(제11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수상)



[평론]

- 신범승의 회화에 대하여 -

이 일 / 미술평론가, 홍익대 교수

소박한 필치 - 그 소박성 바탕에는 이 화가의 보다 밀도있는 기량이 깔려 있는 것이다. 화면 공간 처리에 있어서의 흔들림없는 견실한 구도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색채화된 능숙한 마티에르 구사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회고적'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이미 감각적인 현실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또 다른 상상 공간을 지닌 세계, 요컨대 내면화된 비전의 세계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신범승의 사실적 회화 세계는 표현주의적 세계에도 접근해 가는 것이다.
근자에 와서 신범승은 부쩍 야외 사생에 정열을 쏟고 있는바, 그 풍경화 연작은 '매우 밝고 경쾌하며, 미끄러지는 듯한 운필의 특징적인 화풍을 지니고 있다.' 강가나 산야, 들판, 교외의 마을 등을 소재로 선택하여 현장에서 완성되는 그의 풍경화들은 대상을 접했을때의 순간적인 인상이 화면에 잘 형상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것, 그것이 곧 자연에 대한 신선한 생동감이다.
이와 같은 인상주의적 화풍과는 달리 또 다른 한편에서 신범승은 감각적이자 즉각적인 인상 너머의 또 다른 세계, 즉 대상 세계의 '심상화'라 할 수 있는 회화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회화의 첫번째 범주에 속하는 '사실적 세계'에 대해서도 언급한바와 같이 그 사실적 화풍에서도 이미 향수어린 서민적 정감이 낭만주의적 회상 속에 되살아나고 있는 듯이 보이거니와 거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엄격한 의미에서의 자연의 재현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보다 자유로운 '재생적'접근이다. 그리고 이를 두고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표현주의적 세계라 부른다.
'표현주의적'이라 했을때, 그것은 사실적 세계와는 거리가 먼 비사실적 성향의 것이다. 하기는 그와 같은 성향은 비교적 초기의 '투계도'라든가 해학적 풍속화에서도 찾아 볼수 있는 것이기는 하다. 그리고 그것이 일련의 풍경화에 있어 보다 대담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같은 '남한강변'이라는 풍경, 보다 넓게는 자연이라고 하는 대상이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는 듯한 양상의 것으로 변하고, 색채 또한 뉘앙스에 찬 색조의 변주가 아니라 비대상적인 격한 색채 그 자체의 표현성을 앞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물화 또는 누드에 있어서도 형태에 있어서의 과격한 형태왜곡(데포르마숑)과 함께 그 포즈 또는 표정이 때로는 육감적이랄 수도 있는 여성 특유의 체취를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신범승 회화의 '다원적 양상'이라는 표현을 쓴바 있으나 그 양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되풀이하거니와 사실적, 인상주의적 그리고 표현주의적 성향의 공존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다원적 양상은 어디에 기인되는 것인가. 문제는 그것이 단순한 기법적 차원의 것으로 머물지 않는다는데 있다.
오늘날, 사실과 구상, 더 나아가서는 구상과 비구상의 한계마저 애매해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구상 대 비구상이라는 공식화 내지는 규범화된 이분법이 지양된지 이미 오래인 이시점, 다시 말해서 미술경향이 다변화 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요망되는 것, 그것은 바로 개성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 개성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한 작가가 타고 난 기질의 문제가 아닌가도 생각된다.문제는 그 기질에 얼마만큼 충실 하느냐에 있을 것이며, 거기에 따라 갖가지 시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충실하다는 것, 그것은 또한 어떤 유파라든가 시류에 초연 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술이란 필경은 자연과 인간,인간과 인간과의 만남의 마당이다. 그리고 자연이라고 했을때, 그것은 단순한 방관자로서 바라보는 자연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체험적 삶의 현장으로서의 자연이다. 신범승은 바로 그 현장에 스스로의 몸을 내어던지며 거기에 몰입하는 화가이다.


감동의 진폭 - 회화의 진폭

구체적이고 실재하는 대상에서 출발해 이를 치밀하게 재현 해내다가 갑자기 포커아웃 되듯이 주변 공간들이 연계성과 설명적 차원에서 벗어나 추상화된 공간으로 돌연한 변화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신범승의 화면인 것 같다.

속도감 있는 필촉과 마치 서예에서 보여지듯이, 획들이 분방하게 날려지는 모습들이 연상되는 물감들이 압축되어 밀려나간 그 매끈하고 날렵한 나이프 자욱들, 일정한 색조들의 조율에서 빚어지는 그림은 그래서 어떤 활력이나 진동을 그만큼 자아내는 그림으로 여겨진다.

구상과 추상이 혼재하고 있는 동시에 재현, 묘사와 물감과 붓질의 자율적인 영역이 고스란히 보존되는 그림. 그런 면에서 구상, 추상의 구분이 모호하고 동시에 그런 것들이 한데 엉킨, 그러니까 절충된 화면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최근에 우리 화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향인 것 같다. 아마도 탈 장르나 경계의 와해가 급진전하는 시대적, 문화적 분위기에 일정한 영향을 받고 있는 작가들, 특히 구상 계열의 작가들의 심리적인 양상에서 응축되어 나오는 그림이라는 생각도 든다.

신범승은 그런 속에서 그만의 독자한 화면 구성과 색조, 붓질의 활력을 통해 과감한 변화를 보여 주고 있는것 같다. 대상에서 받은 감정과 심리적 추이를 고스란히 드러내고자 하는 다분히 표현주의적 회화의 한 단면이 보이기도 하고 몽환적인 자연에 대한 감상의 드라마 같기도 하다. 이를 내면화된 자연 체험이라고 할지 아니면 초현실적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보다도 그의 그림은 구체적인 자연에서 출발해 이를 화면 안에 지극한 감동과 정서로, 직관적인 해석으로 표출하고 이를 구상과 추상이 혼효된 조형 언어로 드러내면서 새로운 작업의 한 성과를 가시화하고자 하는 데 관심이 있어 보인다....

자연에서 연유하는 작가 자신의 감동의 폭을 회화적 번안의 진폭으로 확산 시키는 동시에 다양한 기법과 조형 효과를 풀어내려는 시도 등에서 이 작가가 지닌 역량 같은 것이 검출된다. 그로 인해 우리는'신범승 회화'의 한 묘미를 즐길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미술평론가 박영택(現경기대 교수)


출처[포털아트]

야생화 - 작가 최정길



작 품 명 : 야생화
작품규격 : 10M(33.4cm x 53cm)
재    료 : 캔버스에 유채
창작년도 : 2013
작 가 명 : 최정길(경인미술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평론]

최정길작가는 열정적인 창작,작품소재를 보는 순발력이 뛰어나고 데생이 빠르다
작품세계는 그 폭이 한없이 넓고 풍부하다
유화,수채화,누드크로키.풍경,인물,정물등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풍부한 감성의 미학으로 담아내는 창작활동을 했으며 서구와 동구라파,러시아,중국,인도,멕시코등 많은 나라의 유명 미술관을 순회하며 미술기행을 했다

미술로서 이미 세계화에 진입한 선두그룹에 있는 작가이며 유화는 터치감에서 힘이 넘치고 부드럽고 순수한 수채화는 그 색상과 번짐의 매력이 과히 환상적이다
또한 아주 원시적인 야성미는 고갱의 열정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자연의 영역에서 구상을 창작하는 최정길의 작품세계는 그 회화성을 본질로 한다


- 풍자문학 논설위원 문금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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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차고 간결한 그의 역동적인 선과 색의 묘사와 표현력은 소재와 주제를 불문하고 강렬하고 현장감으로 승화되어 깊은 울림과 여운으로 남기에 충분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국내는 물론 아시아, 동구, 서구, 러시아, 아메리카 대륙까지 종횡무진 달려간다. 언제 어느곳에서나 화구를 펼치고 미친듯 그림을 그려댄다.

언뜻 강인한 인상을 주는 그지만 인정많고 눈물 많은 그의 어느구석에서 그런 열정과 과단성이 생겨나는 것일까?
그리고 그는 캔버스에 혼신투구한 자신의 역량을 모두 소유하려 하고 있었다.

-최정길 도록中 (글-이진모)-



출처[포털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