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니 잘실증이 나지않는 장점과 구상또는 추상계열
그림이다 보니 볼때마다 작가가 이그림으로 표현
하려하는것이 무엇인지 매번 다른 답을 얻을수 있다
는 장점을 가짐으로 아무래도 신비감을 유지할수
있는 좋은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중에 이윤희 작가의 그림을 보고 그느낌 그대로에
좀더 강렬함을 느낄수 있어 구입하게 되었다
다만 액자가 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액자제작비는 추가로
발생할것같다
출처[포털아트 - kakei]
| 작 품 명 : | 여심 |
| 작품규격 : | 10P(53cm x 41cm) |
| 재 료 : | 캔버스에 혼합재료 |
| 창작년도 : | 2015 |
| 작 가 명 : | 김길상(2009 상해 국제예술박람회 최우수작가상 수상) |
[평론] [작품 평론] 사실적인 형태를 왜곡시켜 두터운 형태의 선으로 함축함으로써 단순미가 아닌 작가의 의지를 담아 통합된 중간색조의 톤에 조밀한 점의 점묘법을 쓰고 안료에 모래를 섞어 바탕을 검게 하고 그 위에 밝은 색을 덧칠하여 뚜렷한 형상의 윤곽선을 끌어내는 표현방법을 구축하고 있다. (네거티브 방식 - 흑색 선을 선명하게 남기는 방법. 음화, 반전을 뜻하는 말.) 동심 ,여심, 모정의 시리즈는 우리에게 잊혀진 꿈을 심어주는 매력을 갖고 있다. 인간의 본능을 아름답게 표현하여 추상적인 이미지로 옛날 어린 시절로 돌아가 꿈과 낭만이 가득한 시간을 갖게 해주고 동심, 모정에서 나타난 자연주의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영감을 끌어낸다. 생활에서 마주치는 잠재적 고통과 현실인식이 예술창조의 동인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작가의 작품은 해맑고 희망과 환희를 지향하는데 있어서 감동적인 예술의 지표가 된다. -평론 지명수- |
| 작 품 명 : | 숲 속 물고기 |
| 작품규격 : | 50F(116.5cm x 91cm) |
| 재 료 : | 캔버스에 유채 |
| 창작년도 : | 2013 |
| 작 가 명 : | 정관호 |
[작가노트] 詩人 金煥植 선생님의 작품 감평으로 작가노트를 대신합니다. [빛과 숲 속으로 떠나는 행복한 그림 여행] 정관호의 그림은 詩와 같다 21세기는 창조의 시대다. 창조의 시대는 100人 100色의 개성(個性)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은 다변화된 이념 때문에 삶은 매우 혼돈스럽다. 그런 와중에도 그림과 시(詩)를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산다. 그림과 시는 표현의 방법만 다를 뿐, 문화 예술적 품격은 같다. 우리는 그림과 화가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시대에도 맑은 시냇물 처럼 상큼한 화가도 있다. 바로 그런 작가가 정관호다. 그의 그림 속에는 삶의 메시지들이 숨어있다. 작가는 단절된 삶과의 소통을 위하여 江과 바다로 간다. 그곳에는 생(生)의 구속으로부터 탈출한 상상어(想像漁)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이 답답할 때면, 활짝 창문을 열고 세상을 관조하자.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삶는 누구에게나 녹록치 않다. 단절되었다는 것은 양극화(兩極化)되었다는 것이다. 현실을 거울에 비춰보자. 거울 속은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가득할 것이다. 빈부(貧富)의 양극화, 이념(理念)의 양극화, 명암(明暗)의 양극화, 이런 삶의 현상들을 가감없이 터치(Touch)하는 작가의 감성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 명암의 양극화를 통하여 작품의 예술적 오르가즘(Orgasm)을 더욱 승화시키고 있다. 환한 대낮, 캄캄한 동굴 속을 탐사해 보자. 터널의 안과 밖에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 그 경계에서는 작가가 추구하는 빛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이제 작가의 작품 속으로 행복 여행을 떠나보자. 푸른 숲과 붉은 산호초 사이로 햇살은 쏟아지고, 그런 풍경 속에서 상상어들은 열애를 할 것이고, 빛의 실루엣에 숨어서 산란을 할 것이다. 이것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작가의 심적 갈등의 표현이다. 빛이 없으면 지구는 암흑의 세계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벌판일 것이다. 삶의 Cycle은 자연에서 태동하여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 진리다.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은 늘 그렇게 정직하고 긍정적이다. 그것이 그가 추구하는 빛의 세계인 것이다. 작가의 마음속은 언제나 푸른 숲과 붉은 산호초 숲의 숲의 허공 속으로, 수채 물감처럼 번진 해맑은 햇살이 일탈을 꿈꾸는 사람들의 갈증을 시원스레 풀어주고 있다. 돌아보면, 어둡고 습하던 우리들 삶의 행로도 한 줄기 빛으로 환해지고 있다. 답답하던 삶의 경계를 넘어 , 작가는 현실 그 너머의 또 다른 세상을 꿈꾸고 있다. 어항에 갇혔던 고기들이 어항 밖의 세상을 흠모하여 탈출을 감행하였다면, 그 결과는 상상만 해도 아찔할 것이다. 그런 것이 현실인데, 우리들은 언제나 비현실적 상황에서 고민하고 방황을 한다. 하루살이들이 불의 유혹을 거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이 삶과 예술의 상관관계이다. 시를 읽으면 시어(詩語) 하나가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림 또한 그렇게 사람의 심금을 유혹하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 정관호의 그림은 시와 같다. 시를 그리는 작가를 통해서 우리는 양극화된 세상으로부터 새로운 가치의 행복을 찾을 수가 있다. - 詩人 金煥植 [평론] "밝음으로의 지향"을 꿈꾸는 초현실의 공간 정관호의 그림을 얼핏 보면 일반적인 숲 속 풍경을 묘사한 듯 보인다. 그러나 어두움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환한 빛의 대기 속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상황은 숲을 그린 것이라기 보다는 맑은 물이 가득차고 수생식물로 화려하게 장식된 대형 수족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작가는 여전히 빛이 가득한 "숲"을 고집하고 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숲은 현실적인 공간이지만 나는 상상 속의 풍경을 생각한다. 그 속에서 빛을 향해가는 '상상어'들... 내 마음의 우울한 저 깊은 곳에서 밝은 세상을 꿈꾸며..." 그에게 있어 숲은 자연이기 이전에 인간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현실이다. 그리고 또 숲은 무의식의 심연에 암울하게 드리워진 장막이기도 하다. 거기에서 작가는 빛을 그리워하고 빛을 향해 나아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회화에서 빛은 광학적인 현상으로서의 빛으로 취급되기도 하지만, 정말 훌륭한 화가는 가시적인 빛의 수준을 넘어 마음의 빛으로 전환하는 역량을 발휘한다. 정관호의 그림에 묘사된 빛은 분명 가시적인 빛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빛을 연출하고 빛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그가 연출하는 빛은 어두움에서 조금씩 벗어나면서 차츰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환상의 빛이 되어 화면을 가득 메운다. 그가 강조하는 "상상어", 즉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물고기들은 결국 자신의 내면에 흐르는 마음의 은유이다. 정관호는 빛이 스며드는 숲과 그 속을 유영하는 물고기들을 통해 초현실적인 회화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와 함께 그는 우리로 하여금 "밝음으로의 지향"에 우리가 동참하기를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 최 기 득(대구예술대학교 서양화과 교수) |
| 작 품 명 : | 장미 |
| 작품규격 : | (34cm x 68cm 약10호) |
| 재 료 : | 화선지에 수묵담채 |
| 창작년도 : | 2012 |
| 작 가 명 : | 이경모(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
[평론] 한국화로 이렇게 정교하고 세밀하게 극사실화를 잘 표현하는 작가를 일찍이 본 적이 없다 강가의 반질반질한 돌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질감이 손끝에 와 닿는듯이 대단히 사실적인 묘사력이 돋보인다 그의 작업에서 세월이라는 주제는 철학적인 리얼리티라는 새로운 장르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작가가 표현하자고 하는 최종적인 명제는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더 다듬어 지고 아름다워지는 그런 부분을 통해 인생의 미학을 공유하고 느껴보자는 데 있다 |
| 작 품 명 : | 휴식 |
| 작품규격 : | 10P(53cm x 41cm) |
| 재 료 : | 캔버스에 혼합재료 |
| 창작년도 : | 2015 |
| 작 가 명 : | 김길상(2009 상해 국제예술박람회 최우수작가상 수상) |
[평론] [작품 평론] 사실적인 형태를 왜곡시켜 두터운 형태의 선으로 함축함으로써 단순미가 아닌 작가의 의지를 담아 통합된 중간색조의 톤에 조밀한 점의 점묘법을 쓰고 안료에 모래를 섞어 바탕을 검게 하고 그 위에 밝은 색을 덧칠하여 뚜렷한 형상의 윤곽선을 끌어내는 표현방법을 구축하고 있다. (네거티브 방식 - 흑색 선을 선명하게 남기는 방법. 음화, 반전을 뜻하는 말.) 동심 ,여심, 모정의 시리즈는 우리에게 잊혀진 꿈을 심어주는 매력을 갖고 있다. 인간의 본능을 아름답게 표현하여 추상적인 이미지로 옛날 어린 시절로 돌아가 꿈과 낭만이 가득한 시간을 갖게 해주고 동심, 모정에서 나타난 자연주의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영감을 끌어낸다. 생활에서 마주치는 잠재적 고통과 현실인식이 예술창조의 동인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작가의 작품은 해맑고 희망과 환희를 지향하는데 있어서 감동적인 예술의 지표가 된다. -평론 지명수- |
| 작 품 명 : | 풍차의 마을 |
| 작품규격 : | 10F(46cm x 53cm) |
| 재 료 : | 캔버스에 아크릴 |
| 창작년도 : | 2015 |
| 작 가 명 : | 이금파 |
[평론] # 감탄의 신비한 길! 금파의 그림을 보면 그는 분명히 여성의 찬미자이다. 그는 여자다움의 찬미자이다. 그는 그림을 아름답고 경이롭게 매혹적으로 그린다. 그의 그림 속에 있는 여성들을 보면 여자의 아름다움을 들어내게 하는 정신이 한껏 들어있다. 그는 그림으로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육제적인 것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 그들의 영혼을 공개하려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여자의 천성의 부분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실험적인 그림을 묘사한다. 그의 그림속에 있는 여주인공들은 꿈속에 흘러, 무한한 공간에 나타나는 천사들이며 바람과 원소의 의인화이다. 하지만 그림을 보면 어떤 때는 여자만을 주제로만 하지 않는다. 그는 그가 잘 알고 있는 그 어느 것에 대해 정신적인 인간의 마음과 섬세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지닌 감정을 최대한 나타내고자 하고 있다. 종교나 자연이나 어느 물체에 대해서 그가 그것을 탐닉한 뒤에 그는 그 주제에 그의 느낌을 배경으로 나타낸다. [추천] 내가 금파를 알고 지낸지 아마 10년이 훨씬 넘었으리라. 우연한 기회에 그의 아내인 Frau Monika Border와 같이 커피한 잔 마실 기회가 있어서 동석하게 되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다보니 그의 그림의 이야기까지 하게 되어 그의 집에 가 보게 되었다. 아시아 한국에서 온 그의 그림은 내가 보기에는 거의 흡사 중국 그림과 같았다. 아니 중국그림과 별 다를 게 없었다. 서예이며 불화이며 한국의 풍속화 산수화 등 그의 그림을 보니 거의가 불교의 냄새가 짙어 내가 그에게 종교가 불교냐고 물었다. 그는 온 세상에 있는 신은 다 믿는다고 했다. 그의 대답을 듣고 나는 박장대소를 했다 왜 모든 신을 믿냐고 다시 물었더니 "이 세상에 신으로써 나쁜 신이 어디에 있겠어? 다 좋은 신이니까 우리인간이 신으로 모시는 것이지" 지금도 그의 말이 떠오른다. 그 뒤부터 그와 나는 자주 만나곤하여 지금까지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던 그가 어느 해 인가 Eisenstdt에서 개인전을 한다고 연락이 해서 가보았는데 그의 그림은 완연히 달라졌다. 역사와 문화는 인류가 이 지구에 태어난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갈 것이다. 그 속에서 인류는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을 예술가라고 한다. 금파는 그것을 자기의 영역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모든 나라의 전통문화는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볼 때 거의 중국을 거치지 않고 독창적으로 생겨났다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다. 한국의 문화 역시 그렇다. 언어에서 보더라도 아직 한국의 문화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 한 줄기의 계곡의 흐르는 물줄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아시아의 예술을 보면 중국의 역사문화를 무시할 수 가없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건너온 금파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 나름대로 한국의 전통을 밑바탕 으로 동서양의 교접상태에서 그 만의 예술을 만들기 위해 온갖 애를 써왔다. 특히 오스트리아에서 많은 삶을 살아온 그는 서양화에 심취하여 그가 과거 한국에서 걸어왔던 한국화와 서예의 세계를 바탕으로 서양화를 섭렵하여 오늘날 그 만의 새로운 장르를 구사할 수 있게 된 그는 그의 예술은 이제부터 시작이란다. 몇 년 전에 그는 한국의 전통그림을 전시회를 통해 보여준 후에 요즈음 그의 작품을 보면 서양화로 건너가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장르를 펼쳐나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한국화의 구도에 동양적인 평탄한 색상에서 그 길을 지나 서양화의 큐빅 색상으로 바꾸어 버린 그의 그림에는 날카로울 때는 날카롭고 평온할 때는 평온하게 표현하여 빨려 들어갈 듯한 구성을 잘 표출한 작가이다. 아시아의 그림이 선의 예술이라면 서양화는 빛과 면의 예술이다. 이 두 가지를 그는 이제 혼합하여 자기만의 예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특히 한국의 그림은 음양의 조화와 삼원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있기에 동양철학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될 수 없다고 그는 귀뜸 해 주며 그것을 바탕으로 서양화의 모던 아트에 접목하여 그가 원하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데 필살의 노력을 다하는 그에게 나는 박수로써 그의 그림에 답하고 싶다. 오스트리아 아티스트 협회 평론가 볼프강 알렉산더 밀크람 Wolfgang A. Milchrahm 인간의 정신세계는 자연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닌가싶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그곳에서 본 풍경과 인간의 조화를 화폭에 담아 인간과 자연의 일체성을 나타내어 그것을 한 차원 높혀 3차원 아닌 4차원의 현실을 초월케 하여 무한한 공간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좋은 화가의 그림은 첫 번째는 인간의 형상의 몸짓이나 몸을 영적 안으로 넣어 그것을 제시할 수 있는 그림"이라고 말했듯이 금파는 여성의 아름다움에 영적인 무한대의 공간속으로 여성의 마음이나 생각을 상상으로 발췌하여(혹 어떤 때는 그의 경험에 의해서)그것을 화폭으로 나타내 사람들에게 제시하려는 작업을 하는 작가이다. 그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아름다운 여성들은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한 가지는 조용함과 한 가지는 요란함인데 여성이 가지고 있는 성격들을 최소화 하여 두 가지로 표현을 했는데 그 중 한 가지 조용한 여자들의 형상은 아마 한국의 정서에서 또는 불교의 정서에서 오지 않았나 싶고 다른 하나는 그가 지금 살고 있는 유럽에서의 삶속에서 그가 보아왔던 유럽여성들의 내면성이 아닌 추구성이 아닌가싶다. 어쨌든지 금파는 인간의 육체, 또는 여성의 육체적 아름다움보다도 그 속에 들어있는 정신세계를 들춰내어 현대의 감각에 맞춰 표현하는 훌륭한 작가라고 말하고 싶다. 끝으로 그가 추구하는 아시아와 유럽의 예술을 한데 묶어 통일성으로 만들어내고자하는 유라시안 아트의 꿈을 이루게 되기를 바란다. -오스트리아 아트 저널리스트 한스 게르하르트 슈로이더Hans G. Schroid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