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포털아트 - ckstf]
2016년 7월 5일 화요일
2016년 7월 4일 월요일
꽃배달
미리보기에서 보는것보다 실제로 받아보니 더 그림이 색감이 너무좋은거 같네요
허전한 벽면이 화해진거 같아서 병원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밝아진거같아서 만족합니다.
출처[포털아트 - kang4692]
복숭아 예찬 - 작가 최정길
| 작 품 명 : | 복숭아 예찬 |
| 작품규격 : | 10P(53cm x 41cm) |
| 재 료 : | 캔버스에 유채 |
| 창작년도 : | 2016 |
| 작 가 명 : | 최정길(경인미술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
[평론] 최정길작가는 열정적인 창작,작품소재를 보는 순발력이 뛰어나고 데생이 빠르다 작품세계는 그 폭이 한없이 넓고 풍부하다 유화,수채화,누드크로키.풍경,인물,정물등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풍부한 감성의 미학으로 담아내는 창작활동을 했으며 서구와 동구라파,러시아,중국,인도,멕시코등 많은 나라의 유명 미술관을 순회하며 미술기행을 했다 미술로서 이미 세계화에 진입한 선두그룹에 있는 작가이며 유화는 터치감에서 힘이 넘치고 부드럽고 순수한 수채화는 그 색상과 번짐의 매력이 과히 환상적이다 또한 아주 원시적인 야성미는 고갱의 열정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자연의 영역에서 구상을 창작하는 최정길의 작품세계는 그 회화성을 본질로 한다 - 풍자문학 논설위원 문금용 - .................................................. 힘차고 간결한 그의 역동적인 선과 색의 묘사와 표현력은 소재와 주제를 불문하고 강렬하고 현장감으로 승화되어 깊은 울림과 여운으로 남기에 충분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국내는 물론 아시아, 동구, 서구, 러시아, 아메리카 대륙까지 종횡무진 달려간다. 언제 어느곳에서나 화구를 펼치고 미친듯 그림을 그려댄다. 언뜻 강인한 인상을 주는 그지만 인정많고 눈물 많은 그의 어느구석에서 그런 열정과 과단성이 생겨나는 것일까? 그리고 그는 캔버스에 혼신투구한 자신의 역량을 모두 소유하려 하고 있었다. -최정길 도록中 (글-이진모)- |
출처[포털아트]
초승달, 야경 - 작가 이동업
| 작 품 명 : | 초승달, 야경 |
| 작품규격 : | (50cm x 65.5cm 약15호) |
| 재 료 : | 캔버스에 유채 |
| 창작년도 : | 2016 |
| 작 가 명 : | 이동업 |
[평론] 긴 시간, 오랜 침묵으로 드러난 자연 (미술평론가 박영택, 평론에서 발췌) 그의 그림은 무척 단단하다는 경질, 육질의 느낌이 든다. 화면처리에 의한 그 견고하고 강한 느낌은 절대적인 정적과 힘을 은연중 드러낸다. 그는 인간의 삶이 배제된 천연의 자연만을 다루면서 그 자연의 남성적인 힘과 절대적인 위용을 지극히 단순화시켜 그려낸다. 전체적인 색조 역시 지극히 억제된, 조율된 몇 가지 색상이 깔려있으며 수없이 많은 점을 찍어서 바탕을 만들고 그 위를 덮어나간 그림이다. 밑 색들이 깊이 있는 색감을 만들고 겹치면서 얼핏 얼핏 드러나는 다채로운 색들이 중층적인 깊이를 만든다. 그는 자연을 자신의 느낌의 색으로 치환하고 모든 것들을 납작한 평면에 밀착시키면서 촉각적인 질감을 부여했다. 그의 자연풍경은 실재하는 현실경 이면서도 다분히 비현실적인 느낌이 강하게 든다. 탈색된 세계, 일상적인 사물의 색채가 지워진 세계, 음이 제거된 침묵과 적막이 흐르는 세계가 그것이다. 그는 그러한 고독과 침묵으로 절여진 풍경의 한 순간을 자신의 색채와 질감으로 고정시켰다. 이 시간은 아주 긴 시간이다. 너무 긴 시간은 체감되지 못한다. 영원이란 것이 그럴 것이다. 그 시간 아래 잠들 듯이 자리한 자연이 이동업의 풍경이다. -------------------------------------------------------------------------------- 그의 그림에는 시적인 긴장미가 있다 (미술평론가 신항섭, 평론에서 발췌) 이동업도 자연 풍경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대상을 단순 평면화시킨 간명한 조형 감각으로 자연의 이미지를 포착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한마디로 일체의 설명적인 요소를 배제한 단순 명쾌한 이미지 구성의 형식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분명 산과 하늘과 바다라는 자연의 형상이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적인 시각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형태감각을 구사함으로서 회화적인 가치를 얻으려 하는 것이다. 그림은 반드시 눈에 보이는 대상만을 진실로 받아 들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불가시적인 존재의 그림자까지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작가의 조형감각이요 그림의 가치라 할 수 있다. 정제된 풍경이라고 할까. 산과 바다와 하늘로 대별되는 자연에 동일한 조형어법을 적용함으로서 마치 색면대비 및 조화를 추구한 평면 작업으로서의 형식에 접근하고 있다. 거기에는 감정의 과잉이 없다. 단지 관조한 대상으로서의 자연의 실체만이 자리 하고 있을 따름이다. 어쩌면 종교적인 엄숙함이라든가 끝없는 침묵, 그리고 적요한 내적 감정을 간직한 하나의 관념화에 가까운지 모른다. 실제의 대상을 형태적인 면에서 생략, 단순화, 함축하는 그의 조형감각은 이미 비 실제적인 조형공간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시적인 긴장미가 있다. 실제의 대상속에서 추스려낸 간결한 형태미가 가지고 있는 내적 의미로서의 서정성이야 말로 그의 그림을 이루는 뼈대가 아닐까. |
출처[포털아트]
토스카나의 여운 - 작가 이금파
| 작 품 명 : | 토스카나의 여운 |
| 작품규격 : | 15F(65cm x 53cm) |
| 재 료 : | 캔버스에 아크릴 |
| 창작년도 : | 2016 |
| 작 가 명 : | 이금파 |
[평론] # 감탄의 신비한 길! 금파의 그림을 보면 그는 분명히 여성의 찬미자이다. 그는 여자다움의 찬미자이다. 그는 그림을 아름답고 경이롭게 매혹적으로 그린다. 그의 그림 속에 있는 여성들을 보면 여자의 아름다움을 들어내게 하는 정신이 한껏 들어있다. 그는 그림으로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육제적인 것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 그들의 영혼을 공개하려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여자의 천성의 부분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실험적인 그림을 묘사한다. 그의 그림속에 있는 여주인공들은 꿈속에 흘러, 무한한 공간에 나타나는 천사들이며 바람과 원소의 의인화이다. 하지만 그림을 보면 어떤 때는 여자만을 주제로만 하지 않는다. 그는 그가 잘 알고 있는 그 어느 것에 대해 정신적인 인간의 마음과 섬세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지닌 감정을 최대한 나타내고자 하고 있다. 종교나 자연이나 어느 물체에 대해서 그가 그것을 탐닉한 뒤에 그는 그 주제에 그의 느낌을 배경으로 나타낸다. [추천] 내가 금파를 알고 지낸지 아마 10년이 훨씬 넘었으리라. 우연한 기회에 그의 아내인 Frau Monika Border와 같이 커피한 잔 마실 기회가 있어서 동석하게 되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다보니 그의 그림의 이야기까지 하게 되어 그의 집에 가 보게 되었다. 아시아 한국에서 온 그의 그림은 내가 보기에는 거의 흡사 중국 그림과 같았다. 아니 중국그림과 별 다를 게 없었다. 서예이며 불화이며 한국의 풍속화 산수화 등 그의 그림을 보니 거의가 불교의 냄새가 짙어 내가 그에게 종교가 불교냐고 물었다. 그는 온 세상에 있는 신은 다 믿는다고 했다. 그의 대답을 듣고 나는 박장대소를 했다 왜 모든 신을 믿냐고 다시 물었더니 "이 세상에 신으로써 나쁜 신이 어디에 있겠어? 다 좋은 신이니까 우리인간이 신으로 모시는 것이지" 지금도 그의 말이 떠오른다. 그 뒤부터 그와 나는 자주 만나곤하여 지금까지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던 그가 어느 해 인가 Eisenstdt에서 개인전을 한다고 연락이 해서 가보았는데 그의 그림은 완연히 달라졌다. 역사와 문화는 인류가 이 지구에 태어난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갈 것이다. 그 속에서 인류는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을 예술가라고 한다. 금파는 그것을 자기의 영역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모든 나라의 전통문화는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볼 때 거의 중국을 거치지 않고 독창적으로 생겨났다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다. 한국의 문화 역시 그렇다. 언어에서 보더라도 아직 한국의 문화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 한 줄기의 계곡의 흐르는 물줄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아시아의 예술을 보면 중국의 역사문화를 무시할 수 가없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건너온 금파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 나름대로 한국의 전통을 밑바탕 으로 동서양의 교접상태에서 그 만의 예술을 만들기 위해 온갖 애를 써왔다. 특히 오스트리아에서 많은 삶을 살아온 그는 서양화에 심취하여 그가 과거 한국에서 걸어왔던 한국화와 서예의 세계를 바탕으로 서양화를 섭렵하여 오늘날 그 만의 새로운 장르를 구사할 수 있게 된 그는 그의 예술은 이제부터 시작이란다. 몇 년 전에 그는 한국의 전통그림을 전시회를 통해 보여준 후에 요즈음 그의 작품을 보면 서양화로 건너가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장르를 펼쳐나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한국화의 구도에 동양적인 평탄한 색상에서 그 길을 지나 서양화의 큐빅 색상으로 바꾸어 버린 그의 그림에는 날카로울 때는 날카롭고 평온할 때는 평온하게 표현하여 빨려 들어갈 듯한 구성을 잘 표출한 작가이다. 아시아의 그림이 선의 예술이라면 서양화는 빛과 면의 예술이다. 이 두 가지를 그는 이제 혼합하여 자기만의 예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특히 한국의 그림은 음양의 조화와 삼원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있기에 동양철학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될 수 없다고 그는 귀뜸 해 주며 그것을 바탕으로 서양화의 모던 아트에 접목하여 그가 원하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데 필살의 노력을 다하는 그에게 나는 박수로써 그의 그림에 답하고 싶다. 오스트리아 아티스트 협회 평론가 볼프강 알렉산더 밀크람 Wolfgang A. Milchrahm 인간의 정신세계는 자연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닌가싶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그곳에서 본 풍경과 인간의 조화를 화폭에 담아 인간과 자연의 일체성을 나타내어 그것을 한 차원 높혀 3차원 아닌 4차원의 현실을 초월케 하여 무한한 공간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좋은 화가의 그림은 첫 번째는 인간의 형상의 몸짓이나 몸을 영적 안으로 넣어 그것을 제시할 수 있는 그림"이라고 말했듯이 금파는 여성의 아름다움에 영적인 무한대의 공간속으로 여성의 마음이나 생각을 상상으로 발췌하여(혹 어떤 때는 그의 경험에 의해서)그것을 화폭으로 나타내 사람들에게 제시하려는 작업을 하는 작가이다. 그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아름다운 여성들은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한 가지는 조용함과 한 가지는 요란함인데 여성이 가지고 있는 성격들을 최소화 하여 두 가지로 표현을 했는데 그 중 한 가지 조용한 여자들의 형상은 아마 한국의 정서에서 또는 불교의 정서에서 오지 않았나 싶고 다른 하나는 그가 지금 살고 있는 유럽에서의 삶속에서 그가 보아왔던 유럽여성들의 내면성이 아닌 추구성이 아닌가싶다. 어쨌든지 금파는 인간의 육체, 또는 여성의 육체적 아름다움보다도 그 속에 들어있는 정신세계를 들춰내어 현대의 감각에 맞춰 표현하는 훌륭한 작가라고 말하고 싶다. 끝으로 그가 추구하는 아시아와 유럽의 예술을 한데 묶어 통일성으로 만들어내고자하는 유라시안 아트의 꿈을 이루게 되기를 바란다. -오스트리아 아트 저널리스트 한스 게르하르트 슈로이더Hans G. Schroider- |
출처[포털아트]
미술시장의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작가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다.그럴리는 절대 없겠지만...
인터넷상에는 한창 주가가 오르는데 미칠 악영향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아무튼 타국에서 외로이 쌓아온 거장의 예술혼이 손상되지 않기를 바란다.
위작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자본이 주도하는 미술시장의 왜곡된 시장의 유통구조를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이라면 금방 이해될 것이다.
아뭏든 그래서 나는 자본의 왜곡과 허상을 제거한 포털아트가 좋다. 유명작가의 몇억하는 그림보다 정말 몇십만원도 안되는 이 그림이 훨씬 좋은 이유다. 그리고 이런 젊은 작가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우리 미술시장이 건전해진다고 믿는다.
출처[포털아트 - susa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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