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연근 화백의 작품은 무게, 넓이, 깊이감의 조화로운 색채가 돋보이며
조화로운 색채만이 아닌 안정된 형태, 대담한 붓터치는 성숙미를 더한다.
작품속의 선이 주는 형태미, 채도가 낮은 중후한 색감이 어우러져 가볍거나 경박하지 않은
묵직한 삶의 깊이와 힘이 화폭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 느껴진다.
[추연근 화백 소개]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만큼이나 굴곡이 심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추 화백은 192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5년제 대구 계성중학을 졸업하고, 일본 나라현 천리 외국어전문학교에
다니던 중 일본군에 징집됐고, 해방이 되고서야 고국으로 생환할 수 있었다.
서울대 미대 1회 입학생.
그러나 민주화를 부르짖다 동맹휴학 한 뒤 복학 과정에서 주동 학생으로 몰려 중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전쟁 때는 국방부 정훈국 소속 종군 화가로 사선을 넘나 들어야 했고,
전란의 와중에 대구 미문화원에서 한국전 종군기록화전을 열었다.
그것이 추 화백의 제1회 개인전이었다.
부산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50년대 초반. 1953년 작곡가 금수현씨가 교장으로 있던 경남여중에서
오현명씨는 음악선생으로, 자신은 미술선생으로 교편을 시작했다.
그런 한편 김영덕 하인두 등과 함께 미술동인 `청맥`을 창립하는 열정을 보였다.
부산의 서양화단에 씨앗을 뿌리는 작업이었다.
부산일보 기획위원과 편집국장, 서울지사장을 맡기도 했다.
신문사에 있을 때인 1965년 국전의 고질화에 반기를 들고 미술계의 등용문으로 민전을 창립했고,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사무국장과 심사위원을 맡았으며, 이 해에 부산시 문화상(미술창작 부문)도 받았다.
그러나 역시 그에게 던져진 화두는 `그림`이었다.
경성대 미대 교수, 예술대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많은 후학 작가를 길러냈다.
지금까지 개인전만 30차례를 열었다.
그는 1973년 `Who` who in the world 2002`라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현존 인물에 관한 인명사전에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등재됐다.
2000년 벽두 세계적 권위의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 미로미술관 초대로 그의 화력은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원로화가 전혁림씨 등과 함께 초대를 받아 이 해 5월 19일부터 한 달간
`한국 빛깔의 신비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었던 것이다.
40년전 흑태양 작품을 발표한 후 40년간 흑태양 작품들을 창작하면서 정치 상황에 굴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팔리는 그림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우리의 현실과 희망을 담은 흑태양을 창작하여 온,
91세 원로화가를 우리는 존경할 수밖에 없다.
조화로운 색채만이 아닌 안정된 형태, 대담한 붓터치는 성숙미를 더한다.
묵직한 삶의 깊이와 힘이 화폭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 느껴진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만큼이나 굴곡이 심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추 화백은 192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5년제 대구 계성중학을 졸업하고, 일본 나라현 천리 외국어전문학교에
다니던 중 일본군에 징집됐고, 해방이 되고서야 고국으로 생환할 수 있었다.
서울대 미대 1회 입학생.
그러나 민주화를 부르짖다 동맹휴학 한 뒤 복학 과정에서 주동 학생으로 몰려 중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전쟁 때는 국방부 정훈국 소속 종군 화가로 사선을 넘나 들어야 했고,
전란의 와중에 대구 미문화원에서 한국전 종군기록화전을 열었다.
그것이 추 화백의 제1회 개인전이었다.
부산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50년대 초반. 1953년 작곡가 금수현씨가 교장으로 있던 경남여중에서
오현명씨는 음악선생으로, 자신은 미술선생으로 교편을 시작했다.
그런 한편 김영덕 하인두 등과 함께 미술동인 `청맥`을 창립하는 열정을 보였다.
부산의 서양화단에 씨앗을 뿌리는 작업이었다.
부산일보 기획위원과 편집국장, 서울지사장을 맡기도 했다.
신문사에 있을 때인 1965년 국전의 고질화에 반기를 들고 미술계의 등용문으로 민전을 창립했고,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사무국장과 심사위원을 맡았으며, 이 해에 부산시 문화상(미술창작 부문)도 받았다.
그러나 역시 그에게 던져진 화두는 `그림`이었다.
경성대 미대 교수, 예술대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많은 후학 작가를 길러냈다.
지금까지 개인전만 30차례를 열었다.
그는 1973년 `Who` who in the world 2002`라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현존 인물에 관한 인명사전에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등재됐다.
2000년 벽두 세계적 권위의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 미로미술관 초대로 그의 화력은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원로화가 전혁림씨 등과 함께 초대를 받아 이 해 5월 19일부터 한 달간
`한국 빛깔의 신비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었던 것이다.
40년전 흑태양 작품을 발표한 후 40년간 흑태양 작품들을 창작하면서 정치 상황에 굴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팔리는 그림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우리의 현실과 희망을 담은 흑태양을 창작하여 온,
91세 원로화가를 우리는 존경할 수밖에 없다.
추연근
[출생]
1922년생
[학력]
1946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현 서울미대) 제1기생으로 입학
[전시 경력]
1947 경북미술 연구소(서동진 화가의 화실)를 맡아 운영
1951 국방부 정훈국 소속 중군화가단으로 근무
1951 제1회 개인전- 한국전 종군기록화전
1953~60 제2~4회 개인전
청맥동인회 창립전
1961~69 제5~8회 개인전, 국제자유미전 초대(동경)
1965 12월 부산시 문화상(제8회 미술창작부분)수상
1967 한국미술협회 부산시 지부장 부산일보사 편집국장 역임
1970 제9회 개인전<흑태양>연작
1971 제10회 개인전<흑태양 그 이후전>
1973 WHO'S WHO IN WORLD 인명록에 수록됨
1975 한국 염색 미술 연구소 개설
1977 제 11회 개인전(대구 이목화랑 초대)
1980 7월프랑수 SALON ART SACRE에 초대출품
1982 자유중국 대북 판화가 하랑 초대전
1983 '83~90'현대미술초대전 출품(국립현대미술관)
제35주년 제헌국회 기념 미술전 초대출품
1984~85 제13~14회 개인전(고려미술관) <귀향전>
1986~90 부산경성대학교 예술대학장 역임
1987 부산 창작 미술가 회장역임
1990 정년최임기념전(KBS전시실)
1993 한국 현대미술 66인전(대백프라자 갤러리)
1995'95 한국 부산 현역 작가전(중국 광주 미술학원 미술관)
중국 계림기행전 (송하갤러리 초대)
1996 추연근 염화전(송하갤러리)
2000 한국 빛깔의 신비전(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 미로미술관)
제24회 개인전(KBS 부산 방송총국 개국 65주년 기념 초대전)
2001 제25회 개인전 (마린갤러리 초대)
2002 원로작가 4인 초대전(마산아트센터 기획/성산아트홀)
2003 제10회 삼양문화상 수상
2006 제27회 개인전 (피카소갤러리 초대
2007 KIAF참가(마산아트센터)
제28회 개인전(마산아트센터 초대)
2007 포털아트초대전
[주요소장처]
<흑태양-잉태>:호암미술관 소장
출처[(주)포털아트(www.por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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