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3일 월요일

김성근의 파도를 맞으며


김성근의 파도는 바람을 가르며 갈기를 휘날리는 신비로운 환상의 준마처럼 느껴진다. 저 멀리서 서서히 고요한 몸짓으로 다가오는 듯하다가 해안가로 임박해서는 급격하게 존재감이 팽창된다. 앞발을 치켜들고 해안가로 상륙하려는 듯한 거세찬 기세가 유난히 돋보인다. 해안가의 바위를 뛰어넘고 모래사장에 파고들어 시원한 기상을 거침없이 펼치며 이내 육지를 점령할 기세로 다가온다.
김성근의 파도 빛깔은 고려청자의 비취색이나 녹색의 옥빛처럼 맑고 우아하며, 고상하고 귀태나는 파도의 자태가 떠도는 빛들을 흡수하며 푸른 초록 빛깔의 파노라마를 일으킨다. 청록빛과 녹청색의 농담과 명암 속에 물들은 파도의 오묘하고 영롱한 색감은 감상자의 시선을 황홀경에 잠기게 한다. 때로는 진한 초록색의 포인트를 강조하면서도 은은하고 속살이 비칠 듯 맑고 투명한 파도 물결의 다채로운 색깔은 조선화에서 색의 미감을 현란하게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는 표본이다.
근경에서는 사선형의 구도 속에서 화면 중심부에 고개를 치켜든 성난 파도의 머리 부분과 바위섬이 마주보며 곧 부딪칠 듯 대치하고 있어 역동적인 긴장감을 북돋아 주고 있다. 녹색 옥빛은 파도의 포말과 혼색을 이루고 진녹색과 연녹색이 뒤엉켜 버무려져 있어 녹색의 진수성찬을 만끽하게 하고 있다. 섬세한 붓질로 파도의 형상을 정교하게 묘사하면서도 거친 필력으로 파도의 줄기와 마디를 힘차게 휘갈기고 있어 조선화의 섬세하면서도 간명하고 강렬한 성격적 특징을 제대로 드러내 주고 있다.
가운데 정경의 파도는 고려청자의 비취색을 발하며 쉼없이 몰아칠 다음 차례의 주자로서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그리고 저멀리 원경의 군청색 파도는 하늘과 맞닿아 하얀 하늘 위로 청색의 물안개를 피우며 자신의 형세를 키워가고 있다. 맑고 고요한 하늘의 여백과 지상에서 전개되는 파도의 부지런한 몸짓이 극적인 대비를 보이고 있어 선명한 잔상 효과를 안겨준다.
북한에서 외국 원수들 혹은 국빈들을 맞이하여 기념 촬영시 영빈관에 어김 없이 배경화면으로 등장하는 그림이 김성근의 파도이다. 이 대형 파도가 북한의 기상과 꿈, 그리고 자부심을 상징하는 그림이라고 자랑삼아 과시하려는 듯하다. 북한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인사라면 북한을 가장 잘 대표하는 개성적인 화가로 자리잡은 김성근 작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온 세상을 삼켜버리고 요동치게 하는 힘을 상징하는 파도의 화가로서 북한 미술계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출처[포털아트 - jangra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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