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보고 있으면 성당에 온듯한 느낌을 받다가, 양옆의
가지위에 새들을 보면 서로 조잘거리는 듯한 앙증맞음이
돋보입니다. 전체적으로 환한 느낌이라 아들방에 걸어 줘야 겠습니다.
출처[포털아트 - albeniz90]
| 작 품 명 : | 홍매화 |
| 작품규격 : | (58cm x 58cm 약16호) |
| 재 료 : | 캔버스에 유채 |
| 창작년도 : | 2014 |
| 작 가 명 : | 이동업 |
[평론] 긴 시간, 오랜 침묵으로 드러난 자연 (미술평론가 박영택, 평론에서 발췌) 그의 그림은 무척 단단하다는 경질, 육질의 느낌이 든다. 화면처리에 의한 그 견고하고 강한 느낌은 절대적인 정적과 힘을 은연중 드러낸다. 그는 인간의 삶이 배제된 천연의 자연만을 다루면서 그 자연의 남성적인 힘과 절대적인 위용을 지극히 단순화시켜 그려낸다. 전체적인 색조 역시 지극히 억제된, 조율된 몇 가지 색상이 깔려있으며 수없이 많은 점을 찍어서 바탕을 만들고 그 위를 덮어나간 그림이다. 밑 색들이 깊이 있는 색감을 만들고 겹치면서 얼핏 얼핏 드러나는 다채로운 색들이 중층적인 깊이를 만든다. 그는 자연을 자신의 느낌의 색으로 치환하고 모든 것들을 납작한 평면에 밀착시키면서 촉각적인 질감을 부여했다. 그의 자연풍경은 실재하는 현실경 이면서도 다분히 비현실적인 느낌이 강하게 든다. 탈색된 세계, 일상적인 사물의 색채가 지워진 세계, 음이 제거된 침묵과 적막이 흐르는 세계가 그것이다. 그는 그러한 고독과 침묵으로 절여진 풍경의 한 순간을 자신의 색채와 질감으로 고정시켰다. 이 시간은 아주 긴 시간이다. 너무 긴 시간은 체감되지 못한다. 영원이란 것이 그럴 것이다. 그 시간 아래 잠들 듯이 자리한 자연이 이동업의 풍경이다. -------------------------------------------------------------------------------- 그의 그림에는 시적인 긴장미가 있다 (미술평론가 신항섭, 평론에서 발췌) 이동업도 자연 풍경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대상을 단순 평면화시킨 간명한 조형 감각으로 자연의 이미지를 포착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한마디로 일체의 설명적인 요소를 배제한 단순 명쾌한 이미지 구성의 형식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분명 산과 하늘과 바다라는 자연의 형상이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적인 시각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형태감각을 구사함으로서 회화적인 가치를 얻으려 하는 것이다. 그림은 반드시 눈에 보이는 대상만을 진실로 받아 들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불가시적인 존재의 그림자까지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작가의 조형감각이요 그림의 가치라 할 수 있다. 정제된 풍경이라고 할까. 산과 바다와 하늘로 대별되는 자연에 동일한 조형어법을 적용함으로서 마치 색면대비 및 조화를 추구한 평면 작업으로서의 형식에 접근하고 있다. 거기에는 감정의 과잉이 없다. 단지 관조한 대상으로서의 자연의 실체만이 자리 하고 있을 따름이다. 어쩌면 종교적인 엄숙함이라든가 끝없는 침묵, 그리고 적요한 내적 감정을 간직한 하나의 관념화에 가까운지 모른다. 실제의 대상을 형태적인 면에서 생략, 단순화, 함축하는 그의 조형감각은 이미 비 실제적인 조형공간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시적인 긴장미가 있다. 실제의 대상속에서 추스려낸 간결한 형태미가 가지고 있는 내적 의미로서의 서정성이야 말로 그의 그림을 이루는 뼈대가 아닐까. |
| 작 품 명 : | 일출 - 신,망,애(日出 - 信,望,愛) |
| 작품규격 : | 10F(53cm x 45.5cm) |
| 재 료 : | 캔버스에 아크릴 |
| 창작년도 : | 2014 |
| 작 가 명 : | 신동권(한국미술지도자협회 회장) |
[평론] 신동권화백은 태양을 훔친 화가다. 가난한 이웃을 도우려한 장발장보다 더 간 큰 도둑이시다. 어쩌면 세상에서 이처럼 위대한 도둑이 또 있을까. 하늘의 태양을 훔쳐 거실로 옮기다니, 나는 그가 우리와 함께 동시대인으로 존재하는 것에서 위안을 느낀다. 태양을 보다, 태양을 꿈꾸다, 태양 속으로 사라진다면....... 우리가 잊었던 태양이 다시 가슴에서 부활한다. 작가의 탁월한 힘이다. (2004년 평론가 탁계석, 21세기문화광 대표) 신동권의 회화작 발언은 어디까지나 순수한 자연주의에 바탕을 두면서 태초의 에덴동산을 연출하는데 있다.그의 유화적 발상은 원초적인 인간의 낙원을 형상화하여 내일에의 보다 밝은 희망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곧 인간의 특성인 반추성, 귀의성 그리고 나아가서는 회귀성으로 일관 되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하나의 인류의 큰 비극으로서의 공해에 대해 절감하며 원초적 에덴동산을 갈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기원을 묵시적인 예술에서 반영시켜 보자는데 신동권의 회화적 특성이 있는 것이다(주간미술 표지작가 이야기 중에서) 신화백의 푸른 해와 첫 대면하던 순간의 충격과 감동을 나는 아직도 선연히 기억한다. 그것은 마치 밀폐된 굴속에 갇혀 시시각각으로 희박해져 가는 산소를 갈구하면서 생명이 자자들던 사람이 갑자기 무엇인가에 나꿔채져 신선하고 맛있는 산소가 가득 찬 숲속에 내던져진 그런 느낌이었다. 이마가 싸늘해지는 충격 이었다아아아아...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탄성을 토했다. 그리고 역시 또 나도 모르게 가슴 가득히 기인 숨을 깊고 깊게 들이마셨는데 그 숨을 도로 내놓으면서 내 마음이 느닷없이 탄식처럼 중얼 거렸다. 그래! 거기가 내 고향이야... 내가 거기서 왔어...나는 저기서 출발 했어... 저기가 나의 시작이야. 그것은 슬픔에 가까운 빛깔의 느낌이면서 모순되게도 한편으로는,오랜 동안을 찾고 헤매던 것을 마침내 찾아낸 것 같은 가슴 뜨듯한 감동이기도 했다.나는 그의 해와 그렇게 만났고 만나는 순간에 반해버렸다.우리는 해를 볼 기회는 많고도 많다.두터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는 있어도 해가 없는 날은 없지 않는가. 그런데 실존의 해를 보면서는 느낄 수 없었던 "내 초원의 고향에의 향수"를 신화백의 작품에서 느끼는 까닭은 무엇일까...내 멋대로 마음대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그것은 아마도 그가 우주를 향해 외치는 화두가 우주의 마음과 영과 혼에 부딪혀 응답으로 되돌아와 빛과 파동 하여 화폭 위에 살아 있기 때문 아닐까. 나는 그림을 모르는 사람이다.나는 음악도 모르는 사람이다.그러면서도 그것들을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욕심도 알고 싶다는 의욕도 없는 사람이다. 이대로 무지한 채로 그저 느껴지는 대로 느끼며 사는 것이 자유로워 나는 이편이 썩 좋다.그의 푸른 해로부터 나는 청정과 순수와 善의 이미지를 얻는다. 또 우아한 허무와 싸늘한 비애도 느낀다. 그의 아스라한 붉은 해를 바라보면서 나는 그 너머에 있을 듯한 적막한 평화와 휴식이 때로는 그립고 또 때로는 두렵기도 하다. 나는 그의 해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극작가 - 김수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