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경남의 그림 세계를 체험하면 색상이 은은하면서도 강조할 부분은 칼라가 짙은 원색에 가깝다. 그에게서 발산되는 색채 미감의 대조 화법은 시원스럽고 활력이 넘치며 고상미와 세련된 감흥이 고조된다. 그만의 몰골기법으로 표현된 형상과 명암은 유난히도 시각적으로 입체감이 도드라지고 영롱하며 투명하다. 특히 겨울의 눈 풍경에서는 그의 이러한 특징과 장점이 빛을 발한다. 그의 그림은 수채화에 가장 가까운 조선화라고 평가받을 만하다. 그의 필력은 속도감이 넘치면서도 섬세한 공력이 투여되고 그의 색채감은 포인트와 악센트의 농도가 효과적으로 집약되면서도 리듬감을 탄력있게 조절하여 부드럽고 담백함이 잘 어울려 있다.
리경남의 '옛 성터의 겨울'은 그의 생동감 넘치는 개성이 매우 잘 드러나고 있는 수작이다. 소나무와 기타 나무들의 줄기와 가지 위에는 청명한 빛이 투과하는 눈을 이고 있다. 어지러이 교차하고 얼키고 설켜 있는 나무가지들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굽이굽이 휘어져 꿈틀거리고 있는 듯 보이나, 한편으로 작가가 의도한 붓질에서는 전반적으로 단정하고 안정감을 주면서도 질서 정연하고 가지런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 위에 붙어 있는 나뭇잎들과 솔잎들은 바람에 흔들리고 맑은 색채감를 새벽별처럼 반짝거리며 그 휘황한 빛의 잔상을 그림 표면에 흩뿌리고 얼어붙었던 빛의 덩어리들은 눈 위에 녹아 흘러내리고 있다.
옛 성터의 단정하게 보수된 깔끔한 인공미와 대각선 구도로 대담하게 가로지른 겨울 나무들의 자연미가 조화롭게 공존하며 푸근한 겨울날의 추억을 회상하게 하는 아늑한 그림이다. 또한 성의 직선적인 견고함과 벽돌의 단단한 이미지에 나뭇가지들의 굴곡진 곡선과 하늘거리는 나뭇잎의 선명한 대비가 인상적이다. 이 성의 가운데 열려 있는 문의 공간 여백은 마치 누군가 반가운 손님을 향해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는 분위기이다. 곧 이 성 안의 그리운 이와 회상의 이끼가 묻어 있는 자연경관들을 만나기 위해 반가운 손님이 금방이라도 찾아올 것 같은 정겹고도 생생한 현장감을 선사하며, 화사한 빛과 온정의 기운을 드리우고 있다.
조선화의 몰골기법을 가장 정통하게 구사하면서도 활달하게 펼치는 두 명의 화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김상직과 리경남을 우선 추천한다. 이 두분 화가의 화면에서는 망설이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특히 리경남의 회화에서는 환한 빛이 피어오르고 경쾌한 리듬을 몰아가며 달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리경남을 조선화 분야의 '빛의 화가'라고 부른다면 적절한 별칭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추운 겨울 영상을 너무나 밝은 빛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빛 덩어리로 가득 채우기 때문에 동장군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만다. 쌓인 눈이 녹아 스러진다는 뜻의 북한어 '눈석이'라는 그의 대표작에서도 빛의 온화한 열기가 화폭에 투영되어 겨울은 이내 따사로운 봄을 맞이할 것 같은 계절의 전환 분위기를 띄워 놓기 마련이다.
출처[포털아트 - jangra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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